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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 선택한 권오준 회장, 포스코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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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포스코 회장 내정자. 포스코 제공

    [경제 쏙] 포스코 새 회장의 과제

    포스코가 오는 14일 정기주총을 통해 권오준 회장 체제로 바뀐다. 포스코는 전임 회장 시절 방만한 국내외 투자 탓에 빚어진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포스코의 8번째 수장인 권 회장이 이런 안팎의 과제들을 수행할 수 있느냐에 포스코의 앞날이 걸려 있다.

    지난 1월16일 인천 송도의 포스코 글로벌연구개발센터. 포스코의 차기 회장 선정을 위한 2차 면접을 앞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포스코 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는 전날 5명의 예비후보 중 권오준 포스코 사장과 정동화 포스코건설 부회장 등 2명을 최종후보로 압축했다. 면접은 가나다순에 의해 권 사장이 먼저였다.

    권 후보가 10분간 1차 면접 때 발표 내용에 관해 보충설명을 한 데 이어 30분간 6명의 후보추천위원(사외이사)들이 차례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외국인인 제임스 비모스키 사외이사의 차례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1차 면접 때와 달리 통역 없이 영어로 직접 질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춰야 하는 포스코 회장이라면 영어 정도는 능숙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유를 내세웠다. 권 후보로서는 내심 쾌재를 불렀을 듯싶다. 영어권에서 학위를 따고, 유럽사무소장까지 역임해 영어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비모스키 사외이사의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술술 답변했다.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면접장에 들어선 정동화 후보는 크게 당황했다. 순수 국내파인 정 후보로서는 허를 찔린 셈이다. 정 후보는 통역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면접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권 후보에게 넘어갔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후보가 당황해서 준비한 답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빌딩. 권오준 회장 체제 출범을 앞두고 인사 및 조직 개편 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뉴시스

    2차면접 때 갑자기 영어 질문
    ‘영어권 유학’ 권 후보 유리해져
    “보이지 않는 손 없인 불가능”

    현정부 실세들과 막강한 인맥
    정동화 후보, 면접 전까진 자신감
    “실세 능가하는 힘…누구겠나”

    국내외 방만한 투자·경영부실
    정준양 전회장 시절 수익성 악화
    권 내정자, ‘난제’ 해결할지 관심
    조직개편 등 역량평가 시험대 될듯

    당일 오후 포스코 이사회는 권오준 사장을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전에도 외국인 사외이사가 있었지만, 후보추천위에서 영어로 직접 질문을 한 것은 처음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처음부터 권오준 회장에게 유리한 구도였다고 봐야 한다. 그 정도 힘을 발휘할 사람이 대통령 말고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포스코 회장 선임에 권력이 개입한 물증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를 보여주는 정황은 더 있다. 정 부회장은 2차 면접 직전까지 나름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포스코 회장직에 도전한 것은 뜻밖이었지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름 아닌 현 정부 실세들과의 끈끈한 인맥이다. ‘왕실장’으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경남고 선배이고, 새누리당의 실력자인 김무성 의원은 한양대 동기이며, 정홍원 총리는 동향(경남 하동) 출신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현 정부 실세들을 능가하는 힘이라면, 과연 누구겠느냐”고 되물었다.

    권오준 신임 회장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강기술 전문가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오직 기술연구의 외길을 갔다. 권 회장에 대한 주위의 평이 대체로 호의적임에도, 처음 5명의 차기회장 후보에 포함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권 회장 후보를 낙점한 배경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은 애초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부 인사로는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낙하산 논란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진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권 회장은 공채 출신이 아니고, 기술 쪽에만 몸담으며 권력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내부 파벌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과감하게 내부개혁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권 회장의 부인인 박충선(61) 대구대 교수의 역할론을 제기한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복지 전공)를 땄는데, 대학은 서강대를 졸업해 박 대통령과 동문이다. 입학연도는 1972년으로 박 대통령의 2년 후배다. 박 교수의 학교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에 있다. 박 교수는 2003~2005년에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을 맡아 도의 여성 정책에 관여했다.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권 회장의 한 지인은 이를 부인했다.

    일각에선 최명주 포스텍기술투자 사장을 주목한다. 최 사장은 대구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최 사장은 2012년 포스코로 영입됐는데,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친구로 알려져, 포스코와 청와대를 잇는 연결고리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 사장은 권 회장이 주도하는 ‘혁신 포스코 1.0 추진반’의 실무 책임자를 맡으며 실세로 급부상했다.

    포스코가 당면한 난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정준양 회장 시절 국내외에서 방만한 투자를 하다가 쌓인 부실을 정상화하는 게 시급하다. 2010년 3조원 이상을 들여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1%에도 못미친다. 같은 해 인수한 성진지오텍도 경영 부실로 포스코플랜텍에 합병시켰으나, 지난해 1000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해외 종속법인들도 2012년 2472억원, 2013년 238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잇달아 기록했다. 한 관계자는 “멕시코 사업의 부실이 심하고,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도 시장 상황이 안 좋아 당분간 수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의 방만한 투자와 경영 부실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됐다. 포스코는 정 회장 취임 직전인 2008년 7조1739억원(연결기준)의 영업이익을 거뒀으나, 지난해에는 2조9961억원으로 급감했다. 영업이익이 3조원 밑으로 떨어지기는 2002년 이후 11년 만이다. 한 사외이사는 “올해와 내년이 포스코의 최대 위기”라고 예상했다.

    1968년 설립 이후 46년 동안 끊임없이 권력의 개입에 시달려온 악순환을 끊는 것도 과제다. 포스코의 최고경영자는 초대 박태준 회장을 시작으로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을 거쳐 권오준 회장까지 8명째다. 전임 회장 7명은 모두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거나 타의에 의해 물러났을 정도로 포스코의 ‘시이오(CEO) 잔혹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미국의 지이(GE)처럼 투명한 최고경영자 승계 프로그램을 구축해서 외압이 간여할 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 경험이 없고, 내부 기반도 취약한 권오준 회장이 과연 이런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포스코 안팎에서는 내부 조직개편과 인사를 그의 리더십과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로 꼽는다. 권 회장은 최근 사내이사 5명 중 4명을 교체하고, 6개 상장 계열사 최고경영자 가운데 5명을 바꾸는 큰 폭의 인사를 단행했다. 이어 11일에는 포스코 조직을 기존 6개 부문에서 4개 본부체제로 슬림화했다. 또 작고 강한 조직을 내세워 지원업무를 맡는 경영임원을 50% 이상 줄이고, 대신 개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전문임원제를 신설했다.

    하지만 본사 임원인사가 늦어지고, 포스코건설 등 비상장 계열사 임원인사는 아직 발표 일정조차 못 잡으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포스코 관계자는 “내부 반발설, 외부인사 낙하산설 등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포스코건설의 경우 건설업의 특성상 권력 실세들이 이권을 챙기는 창구로 알려져 있는데, 외부인사 기용설이 파다하다. 최근에는 근거 없는 투서까지 나도는 고질병까지 재연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권 회장으로서는 인사를 통한 조직 장악이 관건이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포스코 회장도 취임할 때가 가장 힘이 강한데, 이때를 놓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