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은 규모에서 포스코의 10분의 1 수준이다. 포스코건설은 2007년 기준으로 매출액 3조4685억원에 영업이익 2471억원을 올렸지만, 매출액 22조2066억원에 영업이익 4조3082억원의 포스코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실상 포스코의 3인자를 계열사 사장으로 내려보내는 인사를 하는 데 정작 이구택 당시 회장은 국내에 없었다. 이 전 회장은 30여 명의 국내 경제계 인사와 함께 11월17~22일 브라질과 페루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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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윤석만 사장이 앞서나가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박태준 명예회장과 윤석만 사장(현 포스코건설 회장)이 정준양 사장을 방출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구택 회장에게 통보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포스코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이 정준양 사장을 굉장히 예뻐했다. 그런데 2008년 봄, 박 명예회장이 정 사장 처남에 관한 비리 의혹을 듣게 된다. 그 뒤부터 박 명예회장은 정 사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윤석만 사장이 앞서나갔다. 윤 사장은 2002년 포스코 전무에 이어 2004년 부사장, 2006년 사장에 올랐다. 2004년 전무, 2006년 부사장을 거쳐 2007년 사장이 된 정준양 회장보다 항상 한발 앞섰다.
이구택 회장은 퇴임을 결정하면서까지 윤 사장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전세는 역전된다. 1월7일 이후부터다. 정권 실세의 인사 개입 뒤, 정준양 사장은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 뒤 후보 인선 작업은 각종 투서와 암투로 ‘진흙탕’이 되고 만다.
먼저 ‘엔지니어 대세론’이 나왔다. ‘홍보맨 출신 윤 사장보다 엔지니어 출신 정 사장이 우위를 점했다’는 이른바 ‘정준양 대세론’이 급부상했다. 그동안 김만제 전 회장을 빼곤 엔지니어 출신들이 포스코 회장직을 맡아왔다는 논리다. 쇳물을 아는 사람이 회장이 돼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즈음 윤 사장 계열인 핵심 임원 몇 명이 정 사장 지지 세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도 들렸다. 기자들에게는 투서 뭉치들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언론플레이도 시작됐다. 한 신문은 1월15일 기사에서 이구택 회장이 정 사장을 계열사로 보내고 윤 사장을 남긴 것을 두고 정 사장을 후계자로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정 사장을 1년 정도 핵심 계열사에서 훈련한 뒤 자신의 후임자가 되길 바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포스코 관계자는 “정 사장 쪽에서 흘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신문은 1월20일치 기사에서 정 사장이 포스코 사장 재임(2007년 2월 취임) 때 자사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회장은 2008년 3월14일 10억원가량을 들여 주당 47만1101원에 모두 2100주를 산 뒤 3개월 남짓 지난 그해 6월16일 주식 일부를 주당 60만7천원에 매각해 모두 9022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포스코 주가는 정 사장의 매각 뒤 계속 하락해 정 사장은 공교롭게 당시 최고가에 매각한 셈이 됐다. 이같은 시점은 최고급 정보 없이는 사실상 알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 사장의 자사주 매매 과정에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정 사장 가족이 자사주 6개월 매도 금지 규정 등을 잘못 알고 이뤄진 매각이고 정 사장이 이에 상응하는 해명을 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1월28일 포스코 최고 경영진이 주요 기자재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친인척 회사에 대규모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준양 사장이 포스코의 부사장·사장으로 있을 때, 처남이 주요 주주로 있던 (주)파워콤에 대량 납품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파워콤의 포스코 납품 실적은 2005년 1억4300만원에서 2006년 4억2800만원, 2007년 14억100만원, 2008년 30억5600만원으로 급상승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정 사장이 거래량 확대에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런 의혹 보도는 두 후보 쪽의 언론 홍보전이 극에 이르던 때 나왔다. 이구택 회장은 홍보담당 임원을 집무실로 부른 자리에서 ‘대노’했다고 한다. 흥분한 목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뒤 윤석만 사장 진영은 급속히 와해됐다.
홍보실 나서 보도 자제 요청까지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정 사장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나가자, 이 회장이 (윤 사장을 배출한) 홍보 라인에서 조장 또는 묵인하는 것으로 보고 강력히 개입했다. 포스코는 회장 선임을 둘러싼 각종 투서나 제보로 언론 보도가 쏟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보도 차단용 홍보·광고 집행을 급증시켰다. 물론 회장 후보 결정 전까지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던 걸로 안다. 홍보실이 검증 대상이 돼야 할 특정 후보에 대한 보도를 막으려 나선 것은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구택 회장은 포스코 감사실을 통해 정 사장과 관련된 의혹들을 철저히 감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정 사장과 관련된 의혹은 이미 해명이 된 사안이었거나 의혹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둘러 종결지었다. ‘쇼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 사장 편에 서서 지지 활동을 했던 포스코의 한 간부는 “CEO추천위 회의를 앞두고 정 사장은 심사 인터뷰를 위한 문답지까지 포스코 기획실에서 다 받았다. 하지만 윤 사장은 자신이 필기한 뒤 이를 비서가 정리해주는 등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는 포스코 공조직까지 특정 인물을 밀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 지난 2월27일 주총에서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은 포스코 새 회장으로 선임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무리 계열사지만 대표이사를 불과 3개월 사이에 바꾼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정 사장이 포스코건설로 갈 때와 그가 3개월 만에 포스코로 입성할 당시의 ‘권력’은 달랐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5년 만에 포스코건설 회장직을 부활시켜 윤 사장을 앉혔다. 직함상으로는 ‘예우’를 했다. 하지만 실권이 없어 고문에 가까운 역할이다. 포스코건설의 경영을 주관하는 대표이사는 정동화 신임 사장의 몫이 됐다. 정동화 사장은 지난 2004년 광양제철소 부소장으로 당시 광양제철소장이던 정준양 회장을 2년간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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